이승훈의 오산학교와 민족계몽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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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인 이야기

이승훈의 오산학교와 민족계몽 운동

by 지극성 2025.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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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은 일제 강점기 조선의 대표적인 계몽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로,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먼저 실천한 인물입니다. '평북 정주' 출신의 이승훈은 신학문과 신교육을 통해 조선의 청년들이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독립의 시작이라고 보았으며, 오산학교를 설립하여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또한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해 실천적 독립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그는 무장투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교육을 통한 민족 자강’이라는 철학을 가졌고, 이는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가 교육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인물입니다.

이승훈 - 조선의 개화 사상가

오산학교 설립과 민족교육의 실천

이승훈은 교육이야말로 독립의 기초라고 보았습니다. 일제의 억압 아래 교육을 통해 자주적인 민족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한 그는, 1907년 평북 정주에 '오산학교'를 설립합니다. 오산학교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 기관이 아니라, 인격 수양과 민족 자각, 실용 교육을 아우른 종합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종교, 계층, 지역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기독교 정신과 민족주의 교육을 결합한 커리큘럼을 운영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율적 학습과 공동체 생활을 통해 자립심을 키우고, 독립정신을 실천적으로 내면화할 수 있었습니다. 오산학교는 훗날 수많은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인을 배출한 민족운동의 핵심 거점이 되었고, 이승훈은 ‘교육 독립운동가’라는 새로운 리더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는 학교 운영뿐 아니라 교사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고, 실업 교육과 농업 교육에도 관심을 가지며 진정한 ‘생활 기반 민족교육’의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지금의 대안학교, 인성교육, 지역 공동체 학교 모델은 이승훈의 오산학교 철학에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3·1 운동과 실천적 민족 대표로서의 활동

1919년 3·1 운동 당시 이승훈은 종교계·교육계의 대표로 참여하여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립니다. 그는 단순한 서명이나 선언에 그치지 않고, 독립선언서 낭독과 탑골공원 시위 전개에 있어 조직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후 그는 체포되어 수감되며 혹독한 고문과 심문을 받았지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는 종교인과 교육인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던 유일한 민족대표였으며, 이는 그가 민족운동을 일회성 사건이 아닌 지속 가능한 실천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승훈은 이후에도 감옥에서 ‘자주, 자강, 자각’이라는 민족 자립 3대 원칙을 정리하며 동료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철학적 기반을 세웠고, 출감 후에도 다시 오산학교로 돌아가 민족교육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는 명예보다는 실천을, 선언보다는 교육을 통해 조국 독립을 추구했던 사람이며, 민족운동이란 단지 나라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되찾는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활동은 지금도 시민운동, 사회혁신, 공공 교육운동 등에서 영감을 주는 대표적 사례이며, 특히 교육계와 종교계가 사회 변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천적 본보기였습니다.

오늘날 이승훈에게 배우는 교육과 리더십

이승훈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교육을 통한 사회 개혁’입니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나의 교육 운동으로 접근했고, 교육의 본질은 사람을 새롭게 만들고 사회를 개조하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이념이나 구호가 아니라, 현장 중심의 실천 정신입니다. 그는 권위보다 공감을, 강압보다 설득을 중시했고, 학생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는 오늘날 비판적 사고, 민주 시민교육, 프로젝트 기반 학습 등 현대 교육 철학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또한 그는 리더로서의 자격을 ‘헌신과 일관성’으로 정의했으며, 교육자이자 조직가로서 누구보다 앞서 민족운동을 시스템화한 인물이었습니다. 이승훈의 철학은 지금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특히 교육의 역할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그가 남긴 오산학교 정신은 학교를 넘어서 마을, 지역,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는 교육이 단지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오늘을 변화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실천이라고 보았고, 지금 우리에게도 그 정신은 유효합니다.

이승훈은 독립운동가인 동시에 참된 교육자였습니다. 그는 칼이나 총 대신 교과서와 강의를 통해 민족을 깨웠고,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조국의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가 독립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직면한 교육, 정치, 시민의식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여전히 살아 있는 답을 주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승훈의 이름은 교육과 실천, 그리고 민족 사랑이라는 단어와 언제나 함께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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