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 - 개화정신과 민주주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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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인 이야기

서재필 - 개화정신과 민주주의 정신

by 지극성 2025.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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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의 독립과 개화를 위해 힘쓴 정치가이자 의사입니다. 갑신정변 주도, 미국 유학, 독립신문 창간 등을 통해 조선 사회에 민주주의와 언론의 가치를 심은 그는 근대 지식인의 표상이자 실천적 개혁가였습니다.

서재필

조선 최초의 유학생, 개화의 길을 열다

서재필(1864~1951)은 조선 말기 신분제 사회에서 태어나, 1883년 19세의 나이로 최초의 관비 유학생으로 미국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영어와 서양 문물을 익히며 세계의 흐름을 체득했고, 귀국 후 박영효, 김옥균 등과 함께 개화파의 핵심 인물이 되어 **1884년 갑신정변**을 주도합니다. 이는 조선의 신분제와 부패 정치에 대한 저항이자, 서구식 입헌군주제를 꿈꾸는 개혁이었으나 3일 만에 실패로 끝났고, 서재필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미국에서 그는 학업을 계속해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한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으며, 이후에도 조선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조선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한 그는 민중 계몽과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1896년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합니다. 이 신문은 한글과 영어를 병기하며 백성들에게 정치, 국제, 교육 소식을 알렸고, 언론을 통한 개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그는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민권, 자주, 참정권 확대, 반외세 운동**을 전개하며 근대시민운동의 선봉에 섰습니다. 1898년, 대한제국 정부의 탄압으로 다시 미국으로 추방되었으나, 이후에도 독립운동 후원과 지식 전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년까지 의사로 활동하며 민족에 대한 헌신을 실천했고, 한국전쟁 직전까지 조국의 발전을 걱정한 진정한 지식인이었습니다.

명언과 사상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정신

서재필의 말 중 대표적인 것은 『독립신문』 창간사에서 밝힌 “우리의 자유는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절입니다. 이는 외세에 의존하거나 구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민중 스스로 자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참된 개혁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이다”라며 민권과 시민 주체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언어는 개화사상에 기반한 현실 분석과 함께 민중 계몽의 필요성을 지적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급진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민주주의 철학을 담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신문은 민중의 눈과 귀이며, 백성의 권리를 대변하는 말”이라고 언급하며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그가 단순히 글을 쓰는 언론인이 아니라, 언론을 **사회 개혁의 도구**로 삼은 실천적 사상가였음을 보여줍니다. 서재필은 민중에게 정치의 주체로서의 자각을 촉구했고, 이는 이후의 항일운동, 민주화 운동, 시민사회 형성에 결정적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는 조선인 유학생 후원, 한인사회 조직, 독립운동 기금 마련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으며, 그의 언어는 단순한 이상주의가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서재필의 명언은 오늘날 언론, 시민권, 정치 참여, 사회 운동의 기준이 되고 있으며, 현대 한국 민주주의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서재필의 삶은 단지 한 명의 지식인이 이룬 개인적 성공이 아니라, 한 민족이 근대화와 자주를 향해 나아가는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는 시대를 앞서 본 개혁가로서 조선이라는 전근대 사회를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이라는 서구의 가치와 연결하고자 노력했으며, 그 실천을 언론과 교육, 사회 운동으로 이어갔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정보의 시대, 자유민주주의의 국가라고 불리지만, 여전히 서재필이 고민했던 시민 참여, 언론의 책임, 민권 의식의 성숙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제도 개혁을 외친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민중’을 만들기 위한 교육과 계몽에 헌신했으며, 그가 강조한 자주권과 민권은 지금도 우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입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인 지금, 정보는 넘쳐나지만 진실은 부족하고, 표현의 자유는 확대되었지만 책임은 뒤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서재필이 말한 ‘언론은 백성의 눈과 귀’라는 정신은 더욱 깊게 새겨야 할 원칙입니다. 또한 그는 한국 최초의 미국 시민이자 의사로서 세계 속의 한국인을 대표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그의 삶은 단지 조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제적 시야와 글로벌 시민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서재필은 이제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과거를 기리는 것이 아닌, 미래를 준비하라는 당부입니다. 자유는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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