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에서 유일한 박사는 유독 이질적인 인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는 총을 들고 싸운 독립군도 아니고, 정치권력을 쥔 지도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족적은 어느 누구보다 깊고도 넓다.
교육자이자 기업가, 민족운동가이자 철학 실천가로서 유일한은
한국 사회에 ‘진정한 지도자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존재였다.
이 글에서는 유일한 박사의 삶과 철학, 그리고 그가 이룩한 사회적 성취를 바탕으로
오늘날에도 유효한 리더십의 본보기를 조명하고자 한다.
낯선 땅에서 성장한 조선인, 세계 시민으로의 출발
유일한은 1895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당시 조선은 이미 급속한 변화를 맞이하던 시기였고, 유일한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가 8세 무렵 미국에 도착했을 때, 영어는 물론 낯선 문화와 인종차별이라는 장벽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근면함과 높은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학업에 몰두하며 탁월한 성취를 거둔다.
미국 네브래스카 주의 헤이스팅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오벌린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이후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 유일한은 단순히 학문적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 사회의 자본주의 구조와 사회적 책임 의식, 그리고 기업가 정신을 체득하게 된다.
그는 이미 이때부터 지식인은 반드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철학을 내면화했으며,
그 철학은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그의 삶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교육자와 기업가, 두 길을 하나로 꿰어 민족을 위한 실천에 나서다
1936년 유일한은 한국으로 돌아와 유한양행을 창립한다.
이 기업은 단순한 제약회사가 아니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위생, 의학, 영양, 교육에서 뒤처져 있다는 점에 주목했고,
기업을 통해 국민 건강을 향상시키고,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도구로 활용하려 했다.
유한양행은 ‘좋은 약을 만들어 국민의 건강을 지키자’는 신념 아래 설립되었고,
초기에는 외국 약품의 수입과 판매에 의존했지만, 곧 국내 생산을 위한 연구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유일한은 기술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정직과 투명성이라고 강조했고,
이는 당시 조선과 해방 이후 혼란한 한국 사회에서 매우 드문 기업 운영 철학이었다.
그는 기업을 단순한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기업은 국민 교육과 계몽, 사회 윤리의 실천장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실제로 유한양행은 사내 교육을 강화하고 직원 복지를 중시하는 모범적 기업 문화를 조성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한공업고등학교와 유한중학교, 유한재단을 설립하며
교육 분야에서도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갔다.
그가 믿은 바는 명확했다.
민족을 살리는 길은 교육과 자립을 통한 성장뿐이다.
독립운동과 민주주의에 대한 일관된 신념
유일한은 무장투쟁에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조선의 독립과 자주성 회복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미국 유학 시절 그는 흥사단 활동과 대한인국민회에 참여했으며,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과 긴밀히 연대했다.
특히 그는 임시정부를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외교적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도 그는 특정 정치 세력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확립과 정치적 중립성, 시민사회 중심의 정치 발전을 강조했다.
그는 일찍이 “독립은 총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독립된 시민의식과 자립적 경제가 있어야 비로소 완전한 해방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가 말한 독립은 정치적 사건이 아닌, 생활 속 가치로서의 독립이었다.
죽음 이후 더 빛나는 그의 철학과 유산
1971년 유일한은 조용히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사후 유한양행의 운영 원칙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그는 유언장을 통해 자신이 소유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고,
유한재단은 그의 유산을 바탕으로 지금까지도 교육, 복지, 보건의 영역에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가 생전에 남긴 말 중 가장 유명한 문장은 “기업은 나라를 위한 도구여야 한다”이다.
이 말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경영 철학과 삶 전체를 통해 실천한 민족적 사명과 리더십의 본질이었다.
유일한의 기업 경영 철학은 오늘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선구자적 형태라고도 평가된다.
수익만을 좇지 않고,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중시하는 그의 태도는
한국 기업사에서도 유일하게 완성도 높은 철학적 모델로 평가된다.
그의 삶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었고,
그 답은 교육과 기술, 경제를 통해 구체적인 시스템으로 구현되었다.
유일한, 삶으로 증명한 참된 지도자의 모습
유일한 박사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정치보다 넓었고, 그의 결단은 제도보다 깊었다.
그는 이념을 앞세우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신념과 실천으로 민족을 이끈 인물이었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참된 리더십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리더란 말이 앞서지 않아도, 늘 국민과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자세,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가 중요함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겪는 갈등과 위기의 한복판에서,
유일한의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우리에게 ‘리더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진리를 남겼다.
그의 삶이 단지 과거의 교훈으로 끝나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그 철학을 다시 불러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