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불평등한 토지 소유 구조와 무너지는 민생을 바로잡기 위해 실학자들은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이익입니다.
이익은 '여전론'이라는 독창적인 토지개혁 사상을 통해 조선 사회의 근본 문제를 꿰뚫었고, 이후 정약용 등 후대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본 글에서는 이익의 실학사상 중 핵심 개념인 여전론의 내용과 배경,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현대적 의의를 깊이 있게 분석합니다.
실학자 이익의 시대 인식과 문제의식
이익(1681~1763)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로, 현실을 직시하고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한 실천적 학자였습니다. 성호(星湖)라는 호로도 널리 알려진 그는 양반 출신이었으나, 당대 양반 체제의 모순과 토지 편중 현상에 대해 누구보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활동한 18세기 초중반은 조선 사회가 이미 내적으로 붕괴 조짐을 보이던 시기였습니다. 지주 중심의 농촌 경제, 상업 활동에 대한 억압, 조세 제도의 불공정성 등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었습니다. 양반층은 농민의 토지를 잠식하며 권력을 강화했고, 중간층은 몰락하거나 양반에 흡수되는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이익은 이러한 사회 구조를 관찰하며, 단순한 윤리적 충고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제도 개혁, 특히 토지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단순히 도덕적 설교가 아니라 제도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익 사상의 핵심입니다.
이익은 서양 문물이나 청나라 제도를 맹목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조선 현실에 맞는 제도를 고민했습니다. 그러한 고민의 결실이 바로 **‘여전론(與田論)’**입니다. 이 여전론은 당시 지배계층과 사대부들에게는 급진적인 사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조선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실천적 제안이기도 했습니다.
여전론의 개념과 구조, 이익의 개혁 설계도
여전론은 ‘모든 토지를 고르게 나누어 공동으로 경작하자’는 이익의 토지제도 개혁안입니다. '여(與)'는 함께 나눈다는 뜻으로, 여전(與田)은 '공유하는 토지'라는 개념입니다. 이는 단순한 이상주의적 주장이라기보다, 당시 조선의 경제 현실에 맞춘 실용적 개혁안으로 평가됩니다.
이익의 여전론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기본으로 합니다:
- 모든 농민에게 일정 면적의 토지를 공동 분배함
- 각 집단(리 단위 등)이 공동으로 토지를 경작하고, 생산물을 배분
- 생산물은 공동 저장 후 1차적으로 공공 재정으로 일부 사용
- 나머지를 구성원들에게 균등 분배
즉, 개인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되, 토지 자체는 공동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사회주의와는 다른 ‘공동 책임·공동 이익’의 개념으로, 조선 유교적 공동체 정신과도 연결됩니다.
이익은 여전론을 통해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를 막고, 최소한의 생존 기반을 모든 백성에게 보장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세금을 공동체 단위로 부담하게 하여 조세의 공정성을 높이고, 국가 행정 비용도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 사상은 후일 정약용이 ‘정전제(井田制)’ 형태로 계승하게 되며, 조선 후기 실학파 전체에 큰 영향을 줍니다.
여전론은 농업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 유지를 위한 정치·경제 시스템으로 본 점에서 매우 선진적입니다.
여전론의 한계와 오늘날의 시사점
이익의 여전론은 조선 사회의 현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만, 실제 제도화되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의 지배층이 가진 토지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이었고, 정치적 저항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전론이 실현되려면 행정력과 법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당시 조선 정부는 이를 수용할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익의 개혁안은 제도적 실현보다는 사상적 유산으로 남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론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현대 사회에도 유효합니다.
첫째, 경제 불평등에 대한 구조적 접근의 필요성입니다.
이익은 단순한 자선이나 일시적 구휼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재구성을 통해 빈곤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사회복지나 기본소득 논의와도 통하는 문제의식입니다.
둘째, 지역 공동체 기반의 경제 모델 제안입니다.
여전론은 지역 단위로 토지를 공동 운영하는 방식으로, 지역균형발전과 농촌 공동체 재생의 이론적 모델로도 응용될 수 있습니다.
셋째, 세대 간 자산 불평등 문제에 대한 대안입니다.
이익은 특정 가문이 토지를 독점하여 대를 이어 특권을 누리는 구조를 경계했으며, 공동 분배를 통해 세대 간 형평성을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여전론은 조선 후기의 제안이지만, 현재의 경제정책이나 사회개혁 논의에서 참고할 수 있는 사상적 자산입니다.
그는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았고, 백성의 삶을 구체적으로 설계한 ‘민생 중심 철학자’였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 실천적 개혁가 이익
이익은 조선 후기의 제도적 한계를 누구보다도 깊이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 실학자였습니다.
그의 여전론은 단지 사상의 차원을 넘어서, 농업사회 기반을 재구성하려는 대담한 설계도였습니다.
그는 이상주의자이면서도 냉정한 현실주의자였고, 시대를 바꾸려 했지만 동시에 인간의 본성과 공동체의 현실도 고려했습니다.
이익이 남긴 여전론은 지금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경제 정의란 무엇인가?”, “토지와 자산은 어떻게 나눠져야 하는가?”, “공공성과 효율성은 공존 가능한가?”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익은 그 답을 찾기 위한 지적 여정을 우리에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